고통을 덜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고통을 덜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Sometimes all you can do is to ease suffering, and sometimes that is enough.”
1. 이 문장은 한 간호사의 삶을 통해 전해진 따뜻한 진실입니다. 70년 전, 나병 환자들을 사랑하고 돌보았던 조산 간호사 에디스 코크런의 손글씨 메모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그녀는 모든 병을 고칠 수는 없었지만, 눈물 흘리는 이들의 곁을 지켰고, 아픔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고통을 덜어주는 삶’이 ‘충분한 삶’이라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첨부된 사진은 콩고의 나병 환자와 간호사 에디스 코크런의 손글씨 메모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적 나병 환자로 보이는 듯한 마음의 슬픔을 주었던 사진입니다.)
2. 우연히, 가끔 찾는 콩고의 소식은 항상 저의 눈을 열어주는 창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왜 그런지 모르게 발걸음을 향하게 되는 곳이 있고, 생각의 정류장이 있으며, 마음이 두고 가고 싶어하는 고향 같은 장소가 있습니다. 저도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은 아프리카 콩고입니다. (아마 그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저의 첫 영화 촬영지가 콩고였기 때문이지 않을까합니다.)
3. 오늘도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진 한 장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뒷면에는 손글씨로 짧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고통을 덜어주는 것(Ease Suffering)”— 이 문장은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 제 마음에 말을 걸어옵니다. 콩고에 있었던 누군가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상처 입은 자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사진 속에 조용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4.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해결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힙니다. 누군가가 아프면 병을 고쳐야 하고, 슬퍼하면 웃게 해야 하며, 인생이 무너져 내린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설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어떤 고통은 치유되지 않고, 어떤 상처는 평생을 가도 아물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합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 함께 아파하는 것, 고통을 덜어주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당장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있으심에도 먼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복음 11:35). 그는 인간의 고통 앞에 먼저 공감하고 동참하셨습니다.
4. 베델회복공동체 상담 현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상담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여정을 함께 걸어주는 동반자입니다. 내담자의 상처와 두려움, 분노와 좌절 속에 함께 머무르며, 그 감정이 이해받고 받아들여질 때, 사람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한 어머니가 아들의 중독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며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기도가 부족했는지, 양육을 잘못했는지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상담을 통해 그녀가 아들의 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아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회복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치유’하지 못했지만,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우리의 작은 행위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냉수 한 그릇을 주는 행위조차 기억하시고 상을 베푸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42). ‘충분하다’는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보다 더 크고 너그럽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늘 이 방향을 향합니다. 죄를 없애는 전능의 손보다, 죄인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는 은혜의 발걸음을 더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인생의 고통 속에 직접 내려오시고, 십자가라는 가장 깊은 연대의 자리에서 고통을 함께 지시는 하나님. 이것이 복음입니다.
6. 우리가 세상을 다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작은 사랑은 그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미소 한 번, 눈을 맞추는 일, 함께 울어주는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리고 내가사랑하는교회가 걷는 길입니다.
7. 오늘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선택합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충분한 일입니다.
08-02